손편지 by emilie

'스물여덟 해가 다 가도록 손편지를 보내주는 사람은 너뿐인가 하노라'

하루 늦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았다.
발신인은 최측근인 박 모양.

박 모양은 바로 옆옆동 오피스텔에 산다.
올해 여러가지 사정으로 내가 송도에 둥지를 틀게 되자,
두어달을 그렇게 만나러 오가다가 결국 옆옆동으로 성큼 이사를 감행해주었다..!

최근들어 힘든 일이 엎치고 겹쳐 지쳐 있을 때,
문득 저 멀리 지방이나 해외로 잠적해버리고 싶단 생각이 들었었다.
박 모양과 산책하던 중 한숨 섞인 목소리로 하소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내게 했던 말은.

'나 근데...미안한데 송도까지가 내 마지노선인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고맙고 또 미안했던지.
잡생각일랑 고이 접어 나빌래라, 마음 단단히 먹고 더욱 일에 집중했던 것 같다.

박 모양은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크리스마스 카드 겸 연말 인사 카드로
주변 친구, 지인들에게 손편지를 돌린다.
물론 편지보단 카드에 가까운 짧은 내용이지만,
수십 통의 카드를 손수 적어 우체국에 직접 가서 부치는 그 수고로움을
매년 즐거움으로 감수하는 사람은 박 모양이 내 주변에 유일하다.

값비싼 선물이 아닌데도, 박 모양의 카드를 받으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이렇게 힘들 순 없다, 내년은 더 나아질 거다, 했던 게 벌써 몇 년째인 우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은 좀 더 나아지겠지 하며 올해도 서로 다독이는 우리..

한해 한해 지날수록 내 곁에 박 모양같은 존재가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고맙고 고마운 친구.
나도 조만간 고마운 마음을 담아 신년 카드를 보내야겠다.
옆옆동이지만 우표 쾅 박은 걸로 신년 행운을 빌어줘야지.

고마워, 박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