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 1998) by emilie


감독: 피터 위어
출연: 짐 캐리

트루먼 쇼는 처음 보았을 때나 두 번째 본 지금이나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영화다.
고등학교 시절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누군가를 속인다는 사실 자체에 분개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진심으로 남을 대하는 트루먼(짐 캐리)에 대한 연민, 쇼 제작자와 배우, 시청자 모두에 대한 분노.
이런 이분법적인 시각으로만 트루먼 쇼를 감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서 다시 보는 트루먼 쇼는
주인공에 대한 연민은 그대로지만 그의 주변인에 대한 시선이 다각화 되었다고 할까.
'주변인' 이란 단어를 중심에 놓고 마인드맵핑을 하는 것처럼 여러 갈래의 가지가 뻗어나간다.



실비아(나타샤 맥켈혼)는 트루먼의 첫 사랑으로 그가 현실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한 장본인이다.
하지만 그녀의 역할이 유일했을까.
수많은 헛점을 품은 작위적 현실들, 트루먼의 진정한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 프로그램의 타당성을 비판하는 사람들.
그녀는 트루먼 쇼의 제작자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의 의도에 반하는 모든 것을 대변한 인물이다.
어렸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재회라든가, 촬영 세트장의 모습을 한 건물 내부, 시시때때로 불필요한 제품 설명을 늘어놓으며 대화의 중간중간 어색함을 불러온 부인 메릴(로라 린니)의 존재는 그가 현실의 비현실성을 느낄 만한 충분한 매개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비현실성의 인지를 총집하여 안겨준 것이 바로 실비아다.
트루먼 쇼의 존재를 알리려는 시도, 크리스토프에게 통화로 건넨 비판적 의견 표출 또한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리라 본다.
트루먼을 연민하고 그의 진실한 행복을 바라던 사람이 그녀 혼자는 아니었을 거라 추측하는 내가 너무 순수한 것일까?
어쨋든 그녀는 진심으로 트루먼의 행복을 바랐다.




트루먼 쇼의 제작자 크리스토프.
이 인물 설정 자체가 어떻게 보면 미래(지금)의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의 행보를 예견한 게 아닐까 싶다.
대본 없이 진행되는 현재의 리얼리티 쇼와 사뭇 비슷한 느낌을 안겨주는 트루먼 쇼.
하나 차이점이 있다면 주인공 외에는 모두 대본에 의해 움직인 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프는 달 표면의 방송국 안에서 모든 상황을 지휘하며 씨 헤븐이라는 가상 세계의 전지전능한 신으로써 군림한다.
그가 원할 때 해가 뜨고, 그가 원할 때 비가 온다.
트루먼이 걸어온 삶, 걷고 있는 삶, 걸어가야 할 삶까지도 모두 그의 주관 아래 있는 것이다.
영화 중후반 부에서 실비아와의 통화는 그가 얼마나 트루먼 쇼에 합당함을 부여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언제나 떠날 수 있지만 그러려고 하지 않았어. 마음만 먹으면 진실을 알 수 있는데도 시도하지 않았지. 자네가 괴로운 건 트루먼이 그런 생활에 익숙하기 때문이야"
한 인간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 그 권한 덕분에 평탄한 일생을 보내며 행복한 것 아니냐는 그의 논리는
오만을 넘어 광기의 수준이다.
트루먼 쇼를 통해 많은 이들이 희망을 얻는 다던 얼토당토 않은 그의 논리는
쇼의 종료와 동시에 '다른 볼 것'을 찾아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들의 무심함으로 처참히 무너진다.



바다 건너의 벽에 도달하여 출구 앞에 서있는 트루먼에게 크리스토프는 말한다.
그의 출생부터 걸음마, 처음 학교에 갔던 날들을 회상하며 너는 떠나지 못할 것이라고.
바깥 세상에도 거짓말과 속임수는 만연하지만 이 곳 씨 헤븐에서 너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혹자는 이런 상황을 보며 그가 트루먼을 진정 아끼고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품지 않았을까 하고 평한다.
하지만 나는 정반대의 생각이다.
아버지는 자식의 행복을 막지 않는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식을 죽음으로 내몰지 않는다.
트루먼이 물 공포증을 안고서도 바다로의 탈출을 시도할 때 크리스토프는 최악의 폭풍을 선사한다.
"트루먼이 죽는걸 생중계 할 셈인가?" "우린 그가 태어나는것도 생중계 했지요"
철저한 제작자의 마인드를 드러내주는 대사.
여담) 주인공 아버지의 죽음으로 얻은 물 공포증 또한 이러한 탈출을 염려하여 그려둔 복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 영화에서 짐 캐리는 유쾌함 속에서 혼란과 슬픔을 잘 표현해냈다.
'코미디 전문 배우' 라는 꼬리표를 제대로 잘라버린 영화가 바로 트루먼 쇼가 아니었나 싶다.
훗날 만들어진 '이터널 선샤인(2004)' 에서의 연기도 짐 캐리였기에 가능한, 대체될 수 없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대단한 배우다.

트루먼 쇼는 관객에게 묻는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당신은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타인 속의 나와 오롯이 홀로일 때의 나는 과연 동일한 인물인가?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을 향해 발을 옮길 용기가 있는가?
타인의 삶에 관여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타인의 삶에 관여할 수 있는 권리는 어디에서 주어지는가?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작품 트루먼 쇼.
훗날 또 이 영화를 봤을 때 어떠한 느낌으로 와닿을지 궁금한 영화다.

덧글

  • 잘봄 2013/10/18 13:23 # 삭제

    저에겐 추억이 있는 영화. 님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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